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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리얼 괴수물'이라는 홍보멘트를 볼때부터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웹질 중에 <차우>감상기라는 글을 보니 감히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컬트물이라해도 과언이 아닐 <지구를 지켜라>와 비교를 하는것이 아닌가? 즉시 <차우>를 보기로 마음먹었고, 상당히 재미있게 영화를 봤다. 홍보는 괴수물로 하였으나 이것은 개그물이다, 아주 웃긴. 영화가 시작하고 한 10분 가량은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연출의 타이밍이 아주 묘하다. 이런 연출을 했으면 이런것이 이어질거라 생각하면 어김없이 이어지지 않는다. 기존의 영화문법과는 맞지않고 묘하게 튀들린 타이밍과 연출의 연속이다. 도무지 괴수물이 아닌것 같다. 하지만 플롯은 착실히 괴수물의 수순을 밟아간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있으면 그저 웃길 뿐이다. 리얼도 아니고, 판타지도 아닌 그 사이에서 기존 영화문법을 조롱하듯 이런 저런 장난을 치면서 영화는 전개된다. 그리고 관객은 계속 웃는다. 김빼기를 할까봐 영화의 내용을 설명하기는 꺼려지나 만일 당신에게 B급의 감각이 있다면, 당신의 기대를 무참히 깨부수며 뒤통수를 후려치는 B급 센스를 즐겁게 즐길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관람료가 아깝지 않은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줄 것이다.
시립미술관에서 하는 르누아르전 보고 왔음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라는 홍보문구처럼 솔직히 르누아르의 그림은 너무 행복해보여서 보기 싫었는데 그래도 언제 진품을 보겠냐 라는 생각에 다녀왔다. 실제로 전시장에 가보니 그렇게까지 행복해 보이는 그림만 있는건 아니었지만 역시 큰 매력은 없었다. 이 매력에 대한 부분은 내 취향에 어느정도 기대는 부분이라서 르누아르에 대한 폄하를 하고자 하는건 아니다. 실제로 멀리서 딱 보는순간 시선을 뗄 수 없었던, 많은 작품들 중 단연 그림 자체에서 빛이 난다고 느껴질 정도의 작품도 있었다. 어디까지나 내 취향은 그저 밝기만 한것 보다는 어느정도 우울한 맛이 섞여있는 것을 좋아하는 지라 르누아르의 작품에 큰 매력을 느끼진 못했다. 비유하자면 홍대 인디 여가수들 중 타루씨와 한희정씨의 차이? 타루씨 목소리도 좋지만 너무 밝아서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슬픈 맛이 숨길 수 없이 배어나오는 한희정씨가 더 좋다. J-ROCK으로 비유하자면 라르크와 루나시의 차이같은 느낌? 좀 화재를 돌려서, 언제나 그렇지만 전시되는 작품들은 참 안타깝다. 그 화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유명한 그림들은 안온다. 무슨무슨전, 누구전 하면 언제나 2부리그를 보는 듯 유명한 그림들, 그래서 꼭 보고싶었던 것들은 안온다. 전시물의 1/3 을 습작이나 스케치같은 걸로 채우는 것도 안타깝고 그저 안타깝고 안타깝다.
원작 코믹스도 읽고 쓰고 싶었으나 차일피일 미루느니 일단 영화라도 감상문 끄적여 놓고 봄
전형적 슈퍼 히어로물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는 워낙에 많으니 나는 다른 부분에 집중 왓치맨에 나오는 히어로들의 정체성의 문제랄까. 일단 여느 슈퍼 히어로들처럼 왓치맨의 히어로들도 마스크나 복장으로 구분되는 2가지의 정체성-히어로로서의 정체성과, 히어로가 아닐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이름 외에 히어로로서의 이름이 따로 존재함을 근거로 들 수 있다. 그런게 이걸 그냥 딱 잘라 말할 수 없는게 초반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히어로들도 2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확답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로어 셰크는 마스크를 거의 벗지 않는다. 로어 셰크와 비 로어 셰크의 구분이 거의 없다 보아도 될 정도이다. 로어 셰크의 시민으로서의 이름은 있으나 거의 불려지지 않는다. 영화 내에서 로어셰크의 입으로 말했듯, 비 로어 셰크의 정체성은 어떤 사건으로인해 죽었다. 그는 로어 셰크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다른 히어로들이 마스크를 쓴다고 정체성이 완전히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로어 셰크만큼 강하게 합쳐진 정체성을 지닌 히어로는 없다. 닥터 맨하튼은 사람에서 닥터 맨하튼이 된 이후 늘, 계속, 항상 닥터 맨하튼이다. 그가 검은 삼각 팬티를 입거나 벗고, 수트를 입거나 해도 그는 그냥 닥터 맨하튼이다. 그는 히어로와 비 히어로의 정체성보다는 닥터 맨하튼이 되기 이전과 이후의 정체성으로 나눠야 한다. 다른 히어로들과 달리 현재적 시점의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과거의 인간이었던 정체성과 갈등을 겪는다. 실크 스펙터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실크 스펙터는 2대 나이트 아울과 함께 작성중
일산 아람 미술관에서 한 피사로와 인상파 친구들 전시회 보고왔음
사실 전시회 수준은 좀 별로라고 느껴진다. 미술관에서는 마네와 르누아르의 그림도 왔다고 홍보하지만 그들이 그린 그림인거지 그닥 중요한 그림도 아니었다. 비 서울지역에서 하는 전시회의 한계점이라는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전반적으로 그림들이 야외 풍경위주여서 많은 작가들의 작품이 있긴하지만 쉬이 질리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의의라면 역시 인상주의의 진품들을 봤다는점 빛의 관찰을 위해 야외작업을 많이 한 인상주의의 특성상 캔버스의 사이즈가 작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작은 그림들을 제대로 감상 할려면 화면에 코박고 보는것 보다 멀찍이 거리를 두고 감상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몸소 느끼고 왔다. 가까이서 보면 물감이 뭉개져있는 느낌의 그림들이지만 거리를 두고 볼때야 비로소 화폭에 담겨있는 이미지의 느낌과 동세가 제대로 전달된다 그릴땐 화폭에 코를 박고 그렸을텐데 감상은 멀리떨어져야 제대로 되는 그림이라니 대체 어떻게 이런 효과가 나게 그렸는지 신기할 따름 뭐 이런 부분은 그림을 감상하러 갔다기 보다는 내가 아는 지식을 확인하러 간 부분인 것 같아서 아쉬운 부분이다. 거칠게 말하자면 유럽의 한 마을에 있는 박물관 같은데 있는 작품들을 가져와서 전시를 한 느낌 국내에 제대로 된 인상주의 전시전이 열리는걸 기다리는거 보단 내가 유럽에 여행가서 보고 오는게 더 빠를거 같다 이런 실정에서 미술사 쪽 공부하고 싶다고 하는 내 미래가 좀 답답해진다. 문화예술쪽에 종사하고 싶지만 진짜 밥벌이가 걱정된다
보통 소설을 원작으로 영화를 만들어 두면 기대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텍스트를 기반으로 자신의 상상력을 마구 펼칠수 있는 소설이 영화가 되면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으로 고정되고 더이상 상상이 개입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리 영화가 자신의 상상보다 더 멋있는 화면을 만들었다 하더라도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내에서 무한정 변주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영화를 통해 고정되는 순간 변주의 가능성은 사라지기에 미처 채워지지 못하는 욕망의 부분이 생긴다. 이런 부분에서 볼때, 르네상스 이후의 '아는 대로 그리는 그림'들은 영화에 인상주의 이후의 '보이는 대로 그리는' 근대 회화들은 소설에 비교 할 수 있겠다. 인상주의 이후 입체주의, 야수파에 이를때까지는 구성적 형태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근대 이전의 회화에 비하면 감상자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을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공부하다 떠오른 생각. 일단 기록을 남겨둔다 ![]() 이제 슬슬 김계장님도 참 맘에 든다. 사고를 쳤을때 부담해야하는 것에 대한 규모가 확 달라지는것 같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9/19/2008091901596.html
목욕탕 갔다가 신문 뒤적이다 관심이 가서 스크랩 네이버 검색하니 조선일보랑 한겨례 2신문기사가 뜨던데 조선일보가 좀 더 내용이 많아서 링크 대학원 진학을 미학과나 미술사/이술이론과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 대학원 탐방을 다녀온 김에 미술관을 들러보왔다.
그 동안 이 영화에 대한 글은 트랜스 젠더나 성 정체성에 대한 글 들이 보통이었다. 개봉한지 2년쯤 지난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쓴다면 그동안 써졌던 글들과는 다른 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아버지'에 대한 것이다. 장차 아버지가 될 것이고 되고 싶은 입장에서 '아버지'라는 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 해 보고 싶다.(솔직히 2년쯤 지났기에 새로운 주제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를 처음 봤을때 부터 쓰고 싶은 주제였다. 게을러서 그동안 안써서 그렇지.)
동구는 남자의 몸이라는, 자신의 정신과 불일치하는 육체로 태어났다('정신/육체'같은 이분법적 구분은 되도록 쓰고싶지 않은데 이 방법외에 딱히 설명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중요한 것은 여자가 '되고싶은' 남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구에게 여자라는 것은, 친구가 여러가지 동아리를 거치며 장차 하고싶거나 되고 싶은 것을 찾는 장래희망의 탐색 결과로 나온 것이 아니다. 동구에게 여자라느 ㄴ것은 자신이 도달하고 싳은 목적이나 결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동구에게 여자느 ㄴ그렇게 되어야 할 '변신'의 대상이 아니라 개구리 왕자나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백조들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것 처럼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회복'되어야 하는 모습이다. 흔히 가진 편견 처럼 동성애자들이 동성애자가 '되는'것이 아니라 동성애자로 '태어난'것이듯 성전환자(이거나 될려는 사람)들은 다른 성이 되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래의 성(이라 생각 하는 것)을 회복하려 하는 것이다.(이상의 말은 내가 내 나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이것이 확실히 옳은 것인지 모른다. 성전환자들이 자신의 정신과 육체를 일치시킨 후 얼마나 만족하며, 영육의 불일치에서 오는 고통에서 벗어났는지에 대한 조사 자료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껏 성전환자나 성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는것 같다.) 즉 다른 사람들은 날 때부터 갖추고 있어 고민거리가 되지 않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의 문제가 동구에게는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정신과 육체를 일치시켜야 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성적 정체성의 고민에서 해방되는게 가능해지는 것이다. 보통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타고난 대로 자연스레 살지만 동구는 정신과 육체의 성의 괴리를 해소시킨 후에야 그 자연스런 삶을 시작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성적 정체성의 문제는 쉬이 타인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 왜냐면 당사자가 아닌 타인들은 그런 고민을 해본 일이 없기 때문에 너무나 낯선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이 받아들임의 문제에서 가장 격렬하게 저항하는 것이 바로 '아버지'이다. 영화 내에서 동구의 성적 정체성과 마주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반응은 극적으로 갈라진다. 양자 모두 자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자식의 육체와 정신의 성적 불일치에 맞닥드리자 당황하는 것까지는 동일하다. 하지만 이후 양자의 반응은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어머니는 비록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자식과 마주해서 자식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남성이었던 자식을 여성으로 인정한다. 이것은 구원의 알레고리이다. 중요한 것은 이해가 아니라 인정인 것이다. 인정, 받아들임을 통해 체제 바깥으로 추방당하지 않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미운 오리 새끼가 오리들 사이에서 '나 사실 오리가 아닌것 같애.'라고 말해도 오리 무리 바깥으로 쫒겨나지 않고 계속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미운 오리 새끼는 원래 백조인데 오리들 사이에서 쫒겨나는게 뭐가 어때서?"라는 말은 하지말자. 미운 오리 새끼가 오리 무리에서 쫒겨난다면 백조무리들을 만나 잘 살수도 있겠지만 모든 미운 오리새까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있던 체제에서 추방되어 홀로 된다는 것은 육자의 사회에서만 살던 사람을 망망대해에 홀로 던져놓는 것과 같다. 처음 접하는 주변환경에 도와줄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 백조무리를 만난 미운 오리 새끼처럼 운 좋게 살아 남을 수도 있지만 거의 죽을 수 밖에 없는 죽음의 세계에 던져진 것이 아닌가. 비록 자신이 백조이더라도 자신이 살던 오리 세계에서 추방당하는것 보다는, 오리 세계에서 살면서 자신과 동류인 백조 무리를 만난 후에야 자신이 어느 무리에 속할지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곧바로 죽음의 세계에 던져지는 것 보다 더 생존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거듭 말하지만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나'라는 고유하고 특별한 존재가 부정되지 않고 인정되어 받아들여진다는 것 만으로도 생을 부여받는 것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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