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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한 여성에게 말을 하길
"왜 그렇게 항상 모든 것에 화가 나 있나?" 라는 말을 했었다(고 들었다) 그 여성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지칭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페미니즘 성향이 있었다 이 친구의 발언은 비단 페미니스트 뿐 아니라 진보주의쪽 전반에도 해당하는 말 일텐데 숱한 차별들과 기형적인 권력구조 등 현 사회가 잘못된 점이 너무나 많기에 그리하여 시급히 바꿔야 할 것이 너무나 많기에 '모든 것에' 라고 보일 만큼 화가 난 시선을 던질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나는 일단 인식의 기반에는 진화생물학-심리학을 두고 지향점으로는 페미니즘을 두고 있다. 그런데 내가 페미니스트냐 라는 물음엔 난 페미니스트는 아닌거 같다. '낯설게 하기'라는 전략으로 페미니즘은 '남녀'라는 용어 대신 '여남'을 쓰곤한다. 그 의도는 알고있으나 나는 POLICEMAN 이 POLICEOFFICER 가 된것 처럼 '남녀'라는 용어 대신 '양성'을 쓰길 선호하는 편이다. 그리고 '양성'으로도 담을 수 없는 성들이 많은 만큼 '다성'이라는 용어로 넘어가야하지 않나 싶다. 이쯤에서 뜬금 없어보이는 말이지만, 난 분쟁이 싫다. 투쟁으로 빠른 변혁을 이뤄내는 것보다는, 조용히, 별일 없이 지내고 싶다. 투쟁가나 활동가는 성미에 맞지 않는다는거다. 심리적으로는 바른 것을 지향하려 하지만 심적으로 그런것 일뿐, 논란의 여지가 있을때는 지지점을 향해 소극적 지지만을 보내는 침묵하는 다수에 가까울 것이다. 즉인즉 빠르고 즉각적이지만 분쟁의 여지가 있는 진보적 모습 보단, 조금 느리더라도 큰 분쟁 없이 개선되어나가는 보수적인 모습을 선호하는 편이다. ...아마 완성되지 않는 글이겠지 결국 나는 나를 긍정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편견에 근거한 웃음은 얼마나 많은지 각 개체가 알아서 금지사항을 저지르지 않길 기대하는것 보다는, 차라리 그걸 하지 못할 시스템을 만드는게 더 낫다 심정적 지지만 보내는 침묵하는 군중이면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의 해원 역 이랑 다를것도 없다만... 그런 사람이 많은것도 사실이고... 단테는 '도덕적 해이의 시대에 침묵을 지티는 자에겐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다.'라고도 했지만 지옥을 믿지 않는 입장에선 그렇게 크게 와닿는것도 아니고 동일시의 문제...일꺼야. 얼마나 내 일 처럼 느껴지는가. 사이코 패스의 특성에 머리가 좋다는 항목은 '지금 내게 살해당하고 있는 이 사람은 내가 아니다' 라는 논리적 분리가 잘 이뤄져 감정적 동요가 잘 안일어난다는 뜻이겠지. 동물 애호가는 그 동물 종 자체에 대한 애정도 있겠지만 '생물'이라는 동일시를 통해 감정적 이입이 잘 일어나는 거라고 봄. 포유 동물 애호가가 곤충 애호가보다 많은것도 이런 동일시의 문제로 볼 수 있을거임. 다른 관점과 견해들사이에서 설득을 할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식으로 납득을 시킬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아마 안될거라고 예상하면서도
혹시나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든다는게 참 무섭단 말이지. 흥구기 말마따나 그래서 언제나 100%, 120%의 자세로 임하고 있어야 하는건지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너무나 알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열어선 안될거 같지만 너무나 열고싶은 것이 판도라의 상자와 비슷하달까 희망이라는게 있다는 점에서도 더욱 상징적인지도 자 여러분, 여기 끈이 하나 있어요. 별로 튼튼하지 않아서 양쪽으로 잡아당기면 이내 끊어지고 말 끈이에요. 그대로 둔다면 끈으로서의 효용성을 가진 끈이 계속 남아있을거에요. 하지만 이 끈이 어느정도나 힘을 받고 버텨낼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나요? 하다못해 뭔갈 묶거나 매달았을떄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라도 어느 정도의 강도 실험은 필요하지 않을까요? 자아 잡아 당겨봅시다. 느슨히 늘어져있던 끈은 일직선을 이루고, 팽팽해져요. 아직 끊어지진 않았고 조금 더 큰 힘도 버텨낼 수 있을거 같아요. 더욱 힘을 줘요. 그리고 끈은... 비주기적이지만 종종 우울에 감겨드는건 모리세이 횽도 죽기전에 한 번 영접하러 가야 하는데...
장르로는 노이즈 코어라던가?
하여튼 과격한 음악인데(앨범 아트웍을 보니까 가관이긴 함) 의외로 듣는 순간 꺼버리고 싶지 않음 오래듣진 못하겠지만 아직도 이런거 들어지는구나
공부를 하다가 열역학 법칙이 나왔다.
올해도 어김없이 여름엔 호러물이 만들어지고
또 어김없이 학교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만들어진다. 학교가 이렇게나 공포의 대상이 되는 나라가 있는가 싶을정도로 공식화 되어있는 이 모습. 공포영화의 소재들은 말해지지 못하고 억압되어있는 욕망의 이야기라고 한다. 유교문화, 시집살이 등으로 상징되는 여귀라던가 광인, 나병 환자를 비롯한 소수자의 모습을 나타내는 괴물의 모습들. 과연 한국의 학교는 청소년기 억압의 상징적 공간이라 해도 될 만한 공간이긴 하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한가지 의문이 든다. 취업한 나의 친구들은 어김없이 직장생활의 고난함을 토로하며 학생시절이 더 좋다고 말한다. 직장, 혹은 사회로 표상되는 공간의 말해지지 못한 억압된 욕망들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아서 이야기 되어지지 않는것인가, 아니면 경제학적 관점에서 '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 이기에 창작자들이 달려들지 않고 있는 것인가? 몇 작품 되지 않지만 '군대'라는 공간을 소재로 한 공포물은 이미 만들어졌다. '사이코패스'를 다룬 공포물, 혹은 스릴러는 근 몇년 사이 하나의 경향으로 보일 만큼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다. 20대 중후반에 접어든 내 또래의 사람들은 충분히 학교 안의 억압을 맛본 세대라 생각한다. 이 세대들이 이제 사회로 진출 하고 있고, 이들이 사회에서 체험하게 될 억압들은 어떤 형상을 띈 이야기로 만들어질까. p.s : <괴물>이 그 이야기에 대한 단편을 제공하고 있다고도 보지만 <괴물>이 담고 있는 담론은 좀 더 포괄적이라 생각한다. 콕찝어 '<여고괴담> 세대'라 할 수 있을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 한 이후에 만들어질 공포의 대상이 궁금하다. 학교 공포물 이후의 공포의 경향은 어떤 방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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